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.
전한(前漢)의 원조(元祖)때다. 왕소군(王昭君)에게는 봄은 봄이 아니었다. 기원전 33년,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기 3년전 정략(政略)의 도구가 된 궁녀 (宮女) 왕소군은 흉노(匈奴) 왕(王)에게 시집갔다.
왜 그 많은 궁녀 중 하필이면 왕소군이었던가. 거기엔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.
걸핏하면 쳐내려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한(漢)나라 원제(元帝)는 흉노 왕에게 반반한 궁녀 하나를 주기로 했다. 누구를 보낼 것인가 생각하다가 원제는 궁녀들의 초상화집을 가져오게 해서 쭉 훑었다. 그 중 가장 못나게 그려진 왕소군을 찍었다.
원제는 궁중화가 모연수(毛延壽)에게 명하여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놓게 했는데 필요할 때마다 그 초상화집을 뒤지곤 했던 것이다. 궁녀들은 황제의 사랑을 받기 위해 다투어 모연수에게 뇌물을 받치며 제 얼굴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 졸라댔다. 하지만 왕소군은 모연수를 찾지 않았다. 자신의 미모에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. 괘씸하게 여긴 모연수는 왕소군을 가장 못나게 그려 바치고 말았다. 오랑캐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의 실물을 본 원제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.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.
뒷날 가련한 왕소군의 심정을 누군가 대신해 읊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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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(胡地無花草·호지무화초)
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(春來不似春·춘래불사춘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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